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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규는 9년간의 무명 생활을 딛고 ‘연습생 신화’를
쓴 주인공이다. 2013년 참가한 K리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한 그는 연습생으로 당시 2부 리그 팀
고양HiFC(해체)에 입단했다. 당시 연봉은 2000만원에
불과했다. 주민규는 “드래프트 탈락 후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울었다. 그땐 ‘그라운드에 서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뿐이었다. 연봉이나 소속팀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주민규는 생존을 위해선 무엇이든 했다. 경기 후에도
추가 킥 훈련을 자청하는가 하면 거친 몸싸움을
이겨내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도 했다.
2015년 2부 창단 팀 서울 이랜드로 이적하면서
익숙한 미드필더 대신 공격수로 포지션까지 바꿨다.
정교한 킥과 탄탄한 체격을 앞세운 그는
서울 이랜드 입단 첫 시즌에 23골을 터뜨리며
2부리그를 평정했다. 2019년엔 1부리그
울산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1부의 벽은
높았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 결국 2020년 제주로
이적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당시 나이 서른으로 팀에선 고참급이었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훈련을 거듭했다. 주민규는
“연습생 땐 월급이 100만원도 안 됐다
힘든 시절을 악착같이 버텨내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끝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를 더 악물고 훈련했다”고 말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주민규는 2021년
꿈에 그리던 1부 리그 득점왕의 자리에 올랐다.
뒤늦게 찾아온 주민규의 전성기는 끝날 기미가 없다.
그는 제주에서 울산으로 이적한 올해에도 17골을
넣으며 ‘최고의 골잡이’가 됐다. 울산은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리그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주민규는 “많은 골을 넣은 것도 기쁘지만,
울산 입단 첫해에 생애 첫 우승 트로피를
트로피를 들어 올려서 더욱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또 “내가 열심히 뛰는 모습이 프로를 꿈꾸며
땀방울을 흘리는 수많은 연습생에게 ‘저 사람도
해내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