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직관을 갔다가 대참사를 목격하고 부모님과 함께 저녁 먹고 들어왔습니다. 릴렉스하면서 이번 경기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저의 마지막 직관 패배가 2020년 26라운드 전북전인데 공교롭게도 이번 상대 역시 전북이었네요. 개인적으론 이번 경기가 지난 20시즌 스플릿 라운드 전북전보다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1. 저는 울티에 '대가리 깨져도 홍명보'라고 글을 썼을 정도로 홍명보 감독님을 신뢰하고 지지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솔직히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네요. 사인회에 원두재 선수가 나온다고 했을 때 당연히 박용우-이규성 조합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박용우-고명진 조합이 나왔고 많은 분들이 그러했듯이 불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2. 잘 아시는 것처럼 박용우-고명진 라인의 3선 조합은 불과 휴식기 바로 직전 경기인 15라운드 수원 FC 원정 경기에 등장하였습니다. 당시 경기에서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전반 선제 실점을 하였죠. 이미 한 번 불안함을 겪은 조합을 다시 꺼내든 것이 매우 의아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내부 사정을 모르는 팬입니다. 이규성 선수가 선발에 못 들고 교체 출전도 못하는 합리적 이유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그러나 지난번에 사용된 조합이 문제점을 드러낸 상황에서 꼭 다시 사용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다른 조합이나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물론 그 다른 방법 역시 적중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포츠의 특성상 결과가 우선적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문제점이 드러났던 조합을 다시 꺼내들었다면 결국에는 그 조합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이러한 감독님의 경직된 선수 선발엔 가끔 의문이 들곤 합니다. 일례로 주포지션이 센터백이 아닌 박용우와 원두재를 계속 센터백 자리에 세워 백4 전술을 들고 나오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동해안 더비 때 백3 사용을 통해 결과를 낸 적이 있습니다. 이미 성공적인 결과를 낸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전술과 선수 선발을 고집하시는 것이 가끔씩 아쉽습니다.
5. 최근에 조현우 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물론 저도 20시즌 울산에 처음 와서 보여줬던 조현우 선수의 모습에 비해 지금 조현우 선수의 폼은 많이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번 경기에서 조현우 선수를 비판할 수 있을까요? 조현우 선수가 실수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3선에서부터 포백 보호가 되지 않고 김영권 선수의 실수 등 수비 라인 역시 불안감을 보이는 상황에서 조현우 선수가 과연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이번 경기에서 조현우 선수를 크게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6. 심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심판의 판정 문제가 아니라 우리 선수들이 심판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저도 K리그를 즐겨보는 팬의 입장에서 사실 K리그의 심판들은 그동안 숱한 판정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이번 경기 주심이었던 김종혁 심판 역시 숱한 논란에 섰던 분입니다. 이러한 심판 자질, 오심 등에 관한 문제 제기는 팬들이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 그러나 역시 이번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모습은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제가 지독한 현실주의자라 그럴까요? 저는 문제 제기는 계속 하되 주어진 상황에선 언제나 최선의 결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특정 심판의 성향을 알고 있다면 그 심판의 성향에 따라 플레이를 이어나가는 센스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불만을 표시하고 항의해봤자 결국 제대로 된 결과를 얻지 못하면 경기에서 지게 됩니다. 김종혁 심판이 이번 시즌 데뷔한 신인 심판도 아니고 수많은 경기에서 만난 심판인데 여전히 심판 성향을 고려하지 못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에 실망했습니다.
8. 울티의 한 글을 통해 어떤 분이 선수들을 향해 쓰레기를 던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경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러한 행위는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정말 잘못된 행동입니다. 그런 행동을 한 팬 분께서 반드시 반성하시길 바랍니다. 다만 오늘 서포터석에서 나온 야유와 불만에는 매우 공감합니다. 조금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축구란 결국 그걸 보러 오는 팬과 관중이 없으면 그저 의미없는 공놀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남아서 야유를 하고 '정신차려 울산!'이라고 외치는 팬들은 정말 팀에 대한 애정이 있는 팬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정이 없다면 어쩌면 의미없는 공놀이를 뒤로 한채 금방 경기장을 나갔을 테니까요. 10번째 준우승을 하던 날에도 고생했다며 뜨거운 박수를 보낸 팬들이 울산 현대 팬입니다. 왜 우리 팬 분들이 오늘 그러한 불만을 표시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9. 저는 2019년 중반 울산 현대에 입문하였습니다. 오늘 제가 본 관중 수는 제가 직관 다니기 시작하면서 본 최다 관중이었습니다. 오늘 관중 수는 13,192명이었습니다. 기존 팬 분들은 물론이고 기존 팬 분들이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지인들에게 오늘 빅매치라면 같이 보러 가자고 설득하여 만들어낸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한 종합 커뮤에서 올 시즌 전북이 부진을 이어갈 때 전북 팬 분이 쓴 글이 있습니다. 친구에게 같이 전북 경기를 보러 가지고 했다가 경기가 끝난 후 친구에게 '너는 이게 재밌냐'라고 핀잔을 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가족들을 친구들을 지인들을 경기장에 데리고 온 울산 팬 분들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10. 이 시간까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제가 무슨 놈인지 모르겠네요. 저도 여느 울산 팬과 다름없이 울산 현대 경기 결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오늘 경기 결과가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집니다. 오늘 경기 많이 못 했습니다.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하지만 경기는 끝났습니다. 당장 수요일 서울 원정 경기부터 우리가 알던 든든한 울산 현대의 모습을 보여주길 희망합니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수요일에 상암 원정석에서 응원하고 있을 저를 생각하니 진짜 미친놈인 것 같네요. 경기장에서 혹은 집에서 울산 현대를 응원한 모든 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번아웃 제대로 와서 주저리 주저리 제 생각을 써봤는데 그냥 어느 한 울산 팬의 넋두리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푹 쉬고 수요일에 다시 응원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