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는 있다. 최근 대한민국 여름 날씨가 유난히 더 덥고 습해졌기 때문에 잔디가 더 많이 상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우리나라보다 여름에 더 덥고 습한 J리그 경기장을 보면 쉽게 반박이 가능하다. 지난 해 9월과 올해 3월 ACL 경기 취재를 위해 두 차례 방문한 요코하마 F. 마리노스 홈 구장 닛산스타디움은 J리그에서 잔디가 좋지 않은 대표적인 경기장으로 꼽힌다. 이 경기장에 가니 요코하마 구단 관계자는 “우리 잔디 상태가 좋지 못하다”며 안절부절했다. 하지만 이 경기장에 가 잔디를 확인해 보고 표정 관리를 해야했다. 속으로 ‘뭐야? 우리나라 어느 경기장보다 잔디가 좋잖아’라고 놀라면서도 겉으로는 “음, 이 정도? 살짝 아쉬운 잔디 상태네”라고 연기를 했다.
한 K리그 선수는 요즘 축구화를 흔히 말하는 ‘쇠뽕’을 다시 신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선수는 “요새 경기장에 가 몸을 풀다가 그라운드 상황이 너무 안 좋으면 실제 경기에 들어갈 때 ‘쇠뽕’으로 갈아 신는다”면서 “‘쇠뽕’은 그라운드가 푹푹 파이고 습하고 진흙 같은 바닥 환경 때 신는다. 영국처럼 습한 환경에서 원래 ‘쇠뽕’을 많이 신는데 나도 요새 들어서 거의 대부분의 경기는 ‘쇠뽕’을 신고 있다”고 전했다. 통상적으로 아시아 무대에서는 FG(펌 그라운드)나 HG(하드 그라운드)를 신고 뛰지만 K리그 현 상황에서는 ‘쇠뽕’이라고 통칭되는 SG(소프트 그라운드‘를 선호하는 선수들이 많다. ’쇠뽕‘은 푹푹 패여 체력 소모가 심하고 부상 위험도 더 높다. 미끄러운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더 선호한다.
물론 ‘쇠뽕’이 안 좋고 ‘FG’가 더 좋은 건 아니다. 환경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K리그 선수들이 사실상 물만 뿌려진 맨땅에서 축구를 하게 돼 ‘쇠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흐름은 그라운드 환경이 좋아지면서 ‘쇠뽕’보다는 ‘FG’ 쪽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K리그에서는 사실상 단종 직전인 특정 모델의 ‘쇠뽕 축구화’를 찾는 선수들도 있다. 축구화에 박힌 진흙을 털어내며 뛰는 선수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과연 이게 아시아 축구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에서 나오는 모습인지 안타깝다. 이런 잔디에서의 경기는 선수나 관중이나 모두에게 괴롭다. 돈과 시간과 정성을 들여 관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매 시즌 여름이 덥다는 핑계로 이런 잔디를 마주해야 하고 겨울에는 춥다는 핑계로 이런 잔디에서 치르는 경기를 봐야한다.
우리나라 잔디 상태의 고비는 9월과 10월이다. 원래 장마가 끝나고 폭염을 만나면 가장 가장 환경이 좋지 않아지긴 했다. 천안종합운동장 최규영 반장은 “잔디는 10월 찬바람이 솔솔 불 때 회복을 시켜야 한다”면서 “시즌이 끝나고 월동 준비에 들어가면 작업을 할 시간이 없다. 다시 2월이나 3월에 개막하는데 10월에 적기를 놓치면 잔디를 복구할 시기를 놓친다. 잔디는 때를 놓치지 않고 성심성의껏 관리해야 한다. 기술이 좋다고 되는 게 아니라 시기에 맞춰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언제까지 잔디 문제에 대해 환경탓, 경기장 구조탓, 날씨탓만 할 건가. 혁신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우리는 내년 여름에도 A매치 상대팀에 한 소리 듣고 ACL에 나가 부끄러워하고 관중이 경기력보다 잔디 걱정을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김현회] 언제까지 이런 잔디에서 축구할 겁니까 < 김현회의 골 때리는 축구 < 기사본문 - 스포츠니어스 (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