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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가 아니면 누구였어야 할까. 외국인 감독 선임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유럽에서는 젊고 유능한 전술가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아니더라도 데이터 기반으로 참신한 전술을 들고 와 빅 클럽에서 이름을 떨치는 사례가 많다. 더구나 7월12일 기자회견에서 박지성 테크니컬 디렉터가 말했듯 “역사상 이렇게 많은 외국인 감독이 한국 대표팀을 원한 적”이 없을 정도로, 손흥민·이강인을 필두로 한 한국의 스쿼드는 매력적이다. 외국인 감독 요구는 축구 사대주의가 아니라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다.
홍명보 감독의 강점은 ‘기강’이라고 꼽힌다. 7월8일 이임생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지난 외국인 감독 두 명을 교훈 삼아 팀 내 자유로움 속에 기강은 필요하다”라고 본 게 홍 감독 선임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손흥민·이강인의 다툼을 계기로 대표팀 분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전술 역량이나 훈련 세션의 질과 별개로 ‘아우라’가 있어야 스타 플레이어들도 따른다. 이 문제의식은 정몽규 회장도 공유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감독 능력에 의문부호가 붙은 인물이었지만 이름값은 높았다. 올해 초 아시안컵 기간 한 보도에 따르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클린스만 감독은 손흥민 선수 소속팀) 토트넘의 회장과 직접 통화하는데 손흥민도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클린스만 감독은 선수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관리형(혹은 방치형) 감독이었다. 자신의 명성을 팀 장악에 활용할 의지가 없었다는 의미다. 홍명보 감독은 상대적으로 팀의 고삐를 쥐는 유형에 가깝고, 대표팀 선수들과 선후배 관계로 묶여 있기에 기강 유지에 이롭다는 게 이임생 위원장을 비롯한 KFA 일부 인사들의 판단으로 보인다.
문제는 절차다. 이 모든 의사 결정이 물밑에서, 사실상 한 사람의 주도로 긴급하게 이루어졌다. 홍명보 감독은 면접을 본 적이 없다. 정몽규 KFA 회장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이임생 위원장이 한밤중에 홍 감독을 찾아가 부임을 요청했다. KFA가 접촉한 한 외국인 감독은 한국 대표팀에 대한 발표 자료 50여 장을 준비해 면접에 임했다고 전한다. 물론 홍명보 감독은 언론에 거론된 외국인 감독들보다 월드컵 경험이 풍부하고 적응 기간도 짧을 것이다. 유럽 최상위 리그에 몸담은 외국인 감독들의 이력을 그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전력강화위원회 위원들의 토론을 거쳐 추천해야 하는 절차를 건너뛰고 이임생 위원장 혼자서 판단을 끝냈다. “KFA 법률 검토상 법적 문제는 없다”라고 말했다. 7월8일 박주호 전 전력강화위원은 자신의 유튜브에서 홍 감독 선임 결정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며 “지난 5개월간 뭘 했는지 모르겠다. 허무하다”라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허술한 선임 과정은 홍명보 감독의 가장 큰 덕목으로 꼽혔던 ‘기강’을 흔든다. 이미 몇몇 언론과 유튜버들은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신임 감독 선임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