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시즌이 끝난 시점에서 우리 울산팀은 조민국-윤정환 체제를 거치면서 성적에서나 팀 분위기에서나 망가질 대로 망가진 팀이었습니다. 창단 이후 최초로 하위스플릿까지 경험한 치욕이 당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줬죠
이때 김광국 단장의 선택은(혹자는 김광국보다 더 윗선의 픽이었다는 말도 있었지만)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직을 내려놓고 쉬는 중이었던 김도훈이었습니다
우려가 많았죠. 인천과 울산의 체급과 목표가 다른데 과연 현명한 선택이냐는 것이었죠
그러나 김도훈 감독은 이후 4년간 팀을 이끌면서 전북 현대의 전성기였던 그 시절 우리팀을 다시금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으로 개혁해냈습니다. 축구 유튜버 페노(새벽의 축구전문가)가 2019년경 본인의 채널에서 평했던 것처럼 울산 현대를 K리그에서 가장 트렌디하고 고급스러운 축구를 하는 팀으로 변모시켰고 FA컵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컵도 들어올렸습니다
비원의 리그 우승에 끝내 실패했던 것, 그 과정에서 집권 초반기와 달리 매니지먼트와 관련하여 많은 잡음이 일었던 것, 무엇보다 감독 본인이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멘붕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는 등 실망스러운 면모가 적잖았기에 그에 대한 우리의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입니다만 그의 분명한 공적마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성과 감정은 분리해야죠
저는 2022-2023 리그 2연패의 성과가 김도훈 감독과 무관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마무리를 한 것은 승자의 멘탈을 팀에 불어넣었던 홍명보였으나 울산이라는 팀의 전술적 체질과 토대를 다져놓은 것은 누가 뭐래도 김도훈이었으니까요. 우리 팀에 올 때만 해도 잠재력을 제대로 펴보이지 못하는 선수에 지나지 않았던 박용우의 축구안을 만개시켜 국대급으로 키워낸 사람도 김도훈 감독이었습니다
홍명보호의 경기력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시점도 김도훈 체제에서 다진 전술의 중심이었던 박용우 이적 이후였습니다. 그리고 전술가의 면모는 없다고 봐도 무방한 홍명보는 이 이후로 경기력을 좀처럼 회복시키지 못했죠. 올시즌까지 말입니다. 거기에다 국대 감독 차출 이슈까지 지속적으로 우리 팀을 흔들었고 부상자들까지 속출했으니 이 와중에도 우리가 올시즌 우승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게 일면 놀라워요. 선수들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2016시즌 이후 팀에 부임한 지도자가 만약 김도훈이 아니라 홍명보였다면 저는 우리 팀이 이렇게 리그를 선도하는 위치에까지 오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는 홍명보에게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역사에는 가정이라는 게 없고 무의미하다지만 제 생각은 그러합니다. 이건 이 작자가 우리 뒤통수를 쳤기 때문에 악감정을 담아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대신 홍명보에겐 김도훈에게는 부족한 능력이 있죠. 팀의 응집력을 끌어올려고 단단하게 뭉치게 하는 능력, 이른바 위닝 멘탈리티를 팀에 불어넣는 능력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김도훈과 홍명보의 부임 '순서'가 우리 팀의 입장에선 참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폐허 위에 집을 지을 능력이 필요했을 시기에는 탁월한 리빌딩 능력을 지닌 김도훈을, 마지막 방점을 찍을 능력이 필요했을 시기에는 홍명보를 알맞게 영입했더랬죠. 물론 후자는 우리들에게 지워질 수 없는 상처와 배신감을 안겨주고 진실된 사과 한마디 없이 자신의 영달만을 좇아 우릴 떠났지만요
하위스플릿까지 밀렸던 우리가 끝내 리딩 클럽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에는 최근 수년간 프런트의 적절한 감독 선임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이번에도 꼭 그래줬으면 좋겠습니다. 최종적인 감독 선임까지 거쳐야할 단계가 많은 게 우리 팀이기에 김광국 단장을 비롯한 프런트의 뜻을 오롯이 관철시키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지금 이 시국에서 어느 감독이 위기에 처한 팀을 추스르고 진정한 왕조를 건설할 적임자인지를 잘 판단해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