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 쓴다 생각만 하다가 막상 써보니 용두사미가 된 기분이네요. 진통제 기운에 취해서 퇴고를 거칠 여력이 없으니 글이 써진 대로 그냥 올려봅니다.
* 아이디어의 원천과 이름의 유래
제가 좋아하는 칵테일 중에는 〈Long Island Iced Tea〉를 변형한 〈Adios Motherfucker〉 (이하 A.M.F.)라는 칵테일이 있습니다. 이 칵테일은 〈Long Island Iced Tea〉에서 콜라 대신 레몬라임소다 (= 사이다)를, 코앵트로 (= 트리플 쎅) 대신 블루 큐라소를 넣은 물건으로, 그럭저럭 사이다 맛이 나는 파란색 술입니다. 한편 K리그의 대표적인 파란색 팀 울산 현대에게는 악마의 굿바이송 〈잘가세요〉/〈잘있어요〉가 있습니다. 벌써 감이 오죠?
그러나 A.M.F.는 그 자체로 숙취가 심해서, 혼자 또는 친한 사람들끼리 기분좋게 마시기보다는 이름 그대로 다시 보고싶지 않은 사람에게 사주기 더 적합한 술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A.M.F.의 숙취를 줄이되 울산 현대와의 연관성을 덧붙인 스토리의 커스텀 칵테일을 원하게 되었고, 〈바 틸트〉의 최현성 바텐더의 도움을 받아 A.M.F.의 개량판인 이 커스텀 칵테일을 정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최현성 씨에게 사의를 표합니다.)
우선 울산 현대를 봅시다. 최대 라이벌은 동해안 더비의 숙적, 빨간색 팀 고철 포항 스틸러스가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둘 다 축구팀이죠. 축구 하면 발로 공을 차고 밟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파란색이 빨간색을 짓밟는 형태라면 어떨까요? 아주 좋습니다.
이제 축구를 생각해봅시다. 최현성 바텐더는 축구하면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으로 맥주를 집었습니다. 맥주는 노란색인데, 이렇게 되면 색의 삼원색 (빨강, 노랑, 파랑)이 모두 있는 셈이네요. 불완전하게나마 원하는 어떤 색채라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맥주를 원래 칵테일과 조화시킨다면 필연적으로 파란색이 먼저 영향을 받습니다. 식용색소 파란색과 맥주의 맑은 노란색을 합치면 그럭저럭 잔디의 녹색이 생기겠죠. 뭐 여기까지는 축구의 이미지를 살린다 칩시다. 그런데 맥주를 칵테일에 넣는다고라? ...어울릴까? ...그럼 어울리게 맛을 배합하면 되지요. 이런 걱정을 하기에는 최현성 바텐더는 충분히 전문가였습니다. ㅋ
이 칵테일의 이름은... 원래 계획이야 뭐 단골 술집에 가서 '내 칵테일 만들어주쇼'라고 말만 하면 뚝딱 만들어주는 저만의 메뉴 속 칵테일이었지만, 혼자 축덕술덕질하는 것보다는 울산 팬들이랑 같이 축덕술덕질하는 게 더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울팅이 여러분에게 공개적으로 이름을 정해달라는 투표를 올렸습니다. 그 결과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문수구장의 별칭이기도 한 〈빅 크라운 (The Big Crown)〉을 이 칵테일의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시작은 제가 끊었지만 마무리는 여러분이 함께 한 울티메이트의 칵테일인 셈입니다.
* 제법
(1) 빨간 부분
크렘 드 카시스 10ml
그레나딘 시럽 10ml
위 재료를 하이볼 글라스의 아래에 깐다.
(2) 파란 부분
레몬주스 10ml
럼 15ml
블루 큐라소 15ml
진 10ml
보드카 10ml
위 재료를 젓거나 또는 흔들어서 (Shaking을 권장) 빨간 부분의 위에 쌓는다. 취향에 따라 처음부터 양을 늘리고 싶을 경우 탄산수를 최대 50ml까지 넣는다. 울산의 공해 또는 문수구장 폭죽 연기를 표현하기 위하여 피트향이 강한 위스키 (아드벡 등)를 위에 극소량 뿌리는 것을 권장.
※ 긴급 수정: 쉐이킹 시 얼음이 충분히 녹도록 흔들 것. 충분히 녹지 않을 경우 원래 의도했던 양보다 적게 나옴. 스터로 만들 경우 탄산수 50ml 기본적으로 추가해야 의도한 양이 나옴.
(3) 가니시
고철 맛을 낼 수 있도록 오렌지 껍질을 가니시로 올린다.
(4) 맥주
맥주는 섞지 않고 따로 서빙한다. 흑맥주는 비추.
* 맛, 마시는 방법
'빅 크라운' 칵테일, 좌측은 반쯤 마신 뒤 맥주를 취향껏 탄 거, 우측은 아직 맥주를 안 탄 거 |
아래에 깔린 부분은 포항은 울산 승점자판기니까 달달하게 만들었습니다. 윗쪽의 파란 부분은 일단 아래가 단맛 위주이다보니 단맛이 나는 사이다를 제외하였고, 이로 인해 새콤하고 시원하다 못해 쓴맛마저 나는 것은 울산 축구는 까더라도 우리가 깐다는 심정을 잘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맥주를 부어 섞었을 때에도 달지는 않지만 청량감이 좋아집니다.
메탈 스트로우를 꽂아 마십니다. 추천하는 방법은 꾸역승을 달성하듯이 고진감래주를 마시듯이 달지 않은 윗부분을 먼저 마시고 달콤한 아래쪽을 마시는 것이지만, 빨간색이 너무 싫거나 단맛을 좋아한다면 섞어서 마셔도 OK.
어느 방법으로 마시든 파란 부분이 줄어들면 맥주를 취향껏 붓습니다. 만들 때 파란 부분의 양을 전혀 불리지 않은 경우 처음부터 맥주를 부어 마셔도 맛있습니다.
추천하는 안주는 치즈류입니다. 특히 권장 제법대로 아드벡을 첨가하였다면 벨큐브 치즈가 정말 잘 어울립니다.